전남 강진의 귤동마을은 바람마저 다향(茶香)을 품은 듯 감미로왔다. 마을 바깥에서부터 소나무 뿌리가 굵은 심줄처럼 고집스레 얽힌 오르막길을 밟아 올라갔다.
18년이라는 아득한 유배 세월 중, 사의재(四宜齋)와 보은산방, 제자의 집을 전전하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유배 생활의 마지막 10년을 고스란히 묻어둔 보금자리,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다다랐다.
경기도 남양주의 여유당(與猶堂)에서 태어나 정조의 총애 속에 학문의 꽃을 피우던 조선 최고의 실학자.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와 천주교에 마음에 품었다는 모함의 굴레는 그를 18년 동안이나 이 먼 남도의 바지 모양을 닮은 강진 땅에 가두었다. 1818년 해배(解配)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8년, 제자 18명을 양성하고 고향에서 다시 18년을 살다 1836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18'이라는 숫자의 비극적 굴레 속에서도 결코 체념이나 꺾임이 없었다.

초당으로 올라서자 뒤편 산자락을 가득 채운 야생 차나무들이 바람에 사스락거렸다. ‘다산’이라는 그의 호처럼,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차를 덖으며 학문과 사상을 다듬던 고결한 일상이 잔잔히 배어났다. 집 앞의 약천(藥泉)에는 진흙을 거둬내자 솟구쳐 올랐다던 약수가 지금도 조용히 고여 있었고, 다조(茶竈)라 불리는 넓적한 돌판 위에는 차향을 즐기던 다산과 그의 제자들이 나눈 인문학적 담론의 온기가 여전히 감돌았다.
혹자는 다산같은 인재가 18년의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나라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정말 그 세월은 모진 징벌의 기간이었을까. 하지만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 불후의 명저들이 이곳에서 탄생했고 많은 제자를 기르고 강진의 차 문화를 되살린 공을 생각하면 인재는 어디있든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재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은 이곳에 있던 연못을 크게 만들어 잉어를 풀어놓았다고 한다. 연못 한가운데 바위를 쌓아 만든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 있다.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연못의 잉어들은 잘 크고 있느냐"며 강진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던 다산의 따뜻한 시선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이 아늑한 서정의 풍경 한가운데서 방문객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드는 불협화음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초당(草堂)’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머리 위에 무겁게 얹혀 있는 검은 기와지붕이었다.

원래 이곳은 다산의 외가인 해남 윤씨 가문이 유배객 다산을 위해 내어준 소박한 '초가집'이었다. 다산이 떠난 후 세월의 비바람 속에 폐가가 된 것을 1957년 '정다산유적보존회'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복원하면서 지금의 기와집(瓦堂) 형태로 지어 올렸다. 국가의 재정 지원이 전무하던 그 시절, 후손들이 다산을 추모하며 조금 더 번듯하게 지어 드리고자 했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다산이 500여 권의 불후의 저작을 집필하고, 아전의 자식들과 양반 자제들을 한데 품어 인재로 키워낸 정체성의 핵심은 단단하고 겸손한 '초가'의 정신에 있다. 벼슬길이 막히고 만신창이가 된 민초들의 애환을 가장 가까이서 직시하며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써 내려갔던 그 처절한 실학의 공간이, 오늘날 외형적 웅장함과 관리의 편의성을 이유로 기와지붕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역사의 진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문화재 관리가 어렵고 매년 초가지붕을 얹을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강진군의 행정적 핑계나 복원 비용의 부담은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지적하였듯, 문화재 복원의 절대 명제는 '원형(原形)의 회복'이다. 다산이 기거하며 땀 흘리고 차를 덖던 초가의 소박한 온기를 회복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다.
학자의 외로움과 선비의 기개가 깃든 이곳이 조속히 기와를 벗어 던지고 짚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본래의 '다산초당'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뼛속까지 민중과 호흡했던 실학자의 숨결은, 과시적인 기와지붕 아래가 아니라 보잘것없어 보이는 짚풀 지붕 아래에서 비로소 찬란하게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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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落花)의 눈물을 넘어, 천년 백제의 숨결을 걷다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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