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살에 처음 온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한 중학교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세계역사 교과서를 펼치는 순간 홍안(紅顔)의 소년은 얼어붙을만큼 충격에 빠졌다. 제주도는 온데간데없는 이상한 모습의 한반도, 한국을 소개하는 짤막한 글에는 여전히 한국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고 힘없는 나라였다.
강우성 씨(28)는 13년전 교실에서 느꼈던 충격과 당혹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고 2002년 월드컵유치까지 확정된 97년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의 교과서에서 한국은 그 비중도 턱없이 작았을뿐더러 그나마 왜곡(歪曲)과 오류(誤謬)로 가득했다.
“그때 미국친구들이 볼까봐 황급히 책을 덮었지만 얼마나 심장이 두방망이 쳤는지 몰라요. 미국인에게 한국은 중국과 일본 근처 어딘가에 있는, 별볼일 없는 나라라는걸 알게된거죠.”
UD(덴버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NYU(뉴욕대)에서 심리학석사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제멋대로 짓밟히고 왜곡된 우리의 모습을 되찾겠다’고 결심하고 한국홍보 전도사를 자임(自任)한 것은 그날의 뼈아픈 기억이 출발점이었다.
강우성 씨는 네티즌사이엔 꽤 유명한 파워블로거다. 2007년부터 ‘코리아브랜드이미지(www.koreabrandimage.com)’이라는 블로거를 운영하며 왜곡된 한국의 이미지의 원인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 대안을 제시해 적잖은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그의 글들은 한 포탈사이트를 통해 베스트기사 12회, 특종2회에 선정되는 등 6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2009년 9월과 지난 10월에는 프레스블로그(pressblog.co.kr)가 ‘밀리언 포스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수많은 네티즌들이 공감하며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됐다. 지난 3년간 블로그에 연재한 글들을 간추리고 새로운 내용을 더한 한권의 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향해 바로 서라’(한솜미디어)는 애국심 많은 엘리트 젊은이의 열정이 어떤 결실(結實)을 낳을 수 있는지 잘 말해준다. G20정상회의를 주재(主宰)할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이 왜 여태껏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브랜드의 대명사 Korea> <트레이드마크가 없는 Korea 브랜드> <궁지에 몰린 Korea 대반격을 준비하자>를 비롯한 7개 카테고리와 ‘TV와 영화속 괴상한 Korea의 모습’, ‘우리우리 설날은 Chinese New Year랍니다’, ‘가루비 비빔바 기무치 주세요’ ‘Korea가 없는 코리아타운’, ‘막걸리, 니고리사케로 수출해야 하나?’ ‘도자기는 China, 칠기는 Japan, 그럼 Korea는?’.. 등등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35개의 소제목들은 실로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호기심만 충족시키지 않는다. 무릎을 탁 칠만큼 설득력있는 예시와 논거들, 참신한 발상, 재기넘치는 아이디어, 바람직한 대안까지 컬러사진과 도표로 제시한 이 책은 ‘21세기 초일류 브랜드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더없이 잘 어울린다.
품질관리 부서가 없는 Korea공장과 93년 클린턴 대통령이 ‘기무치’를 먹도록 치밀한 작전을 짠 일본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원산지효과와 시장선점우위이론, 점화력이 부족한 한국의 연상네트워크를 거침없이 진단하고 있다. 마케팅에 종사하는 전문가는 물론,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라는 생각이 든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 서평에서 ‘국가를 기업으로 비유해 마케팅으로 풀어본 흥미로운 책’이라는 적확(的確)한 평가를 내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왜 인지도가 낮은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고,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한국 배우들이 열이면 열 죄다 일본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문화의 홍보 부족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영문표기법과 문화상품 개발에 대해 날카로운 대안을 내놓은 것이 흥미로웠다.”
코리아 브랜드이미지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강우성 씨는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진단한다. 달리 말하면 독창성과 대중성을 갖추되 빠져선 안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는데 가장 중요한 건 주체성입니다. 주체성은 항체(抗體)와 같습니다. 항체역할을 하는 문화의 주체성이 없다면 진정한 우리의 것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강자는 ‘브라질리언 주짓수’로, 약자는 ‘무에타이’로 상대하라는 조언(助言)도 흥미롭다. 브라질의 전통무예인 주짓수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도 지렛대원리를 응용한 기술로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일본과 중국의 문화 캐릭터가 갖고 있는 파괴력을 이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한 후 그 힘의 중심을 한국으로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또한 경쟁력을 지닌 한국의 드라마나 가요를 수출 할 때는 신체의 다양한 부위로 쉴새 없이 공격하는 무에타이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연쇄적인 폭발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한류스타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데이트 장소로 해운대를 즐겨 찾고 전주 비빔밥을 자주 먹는 설정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해운대와 전주비빔밥은 그 나라 시청자들의 뇌리에 한번쯤 가고싶은 장소, 먹고 싶은 음식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남을 위해 길을 터주는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며 등산객들이 편하게 다닐 등산로를 홀로 만든 백발의 할아버지에게서 진정한 개척정신의 멘토를 찾을 수 있었다는 강우성 씨,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든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자식들에게도 붙게 될 이 꼬리표가 자랑스럽기 위해선 지금 당장 범 국민적인 문화적 운동을 벌어야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 아닌가.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월드컵한글티셔츠부터 한국전통캐릭터의 할로윈행진까지
강우성 씨는 말과 글로만 주장하는 ‘책상물림’이 아니다. 그가 실천에 옮겨 개가(凱歌)를 올린 ‘행동 프로젝트’가 여러개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한글/코리아타운 홍보프로젝트’로 월드컵 한글티셔츠를 제작해 1천명의 뉴요커들에게 입히는 사건(?)을 일으켰다.
붉은악마 티셔츠는 널리 알려졌지만 왜 우리 한글대신 ‘Be the Reds’와 같은 영어단어만 쓰인 것밖에 없을까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스스로 한글티셔츠를 디자인해 백방으로 발품을 팔아 마침내 '세계의 수도‘ 뉴욕 한복판에서 한글티셔츠의 붉은 물결을 만드는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비행기를 타고 모국을 방문하는 기내에서도 그의 문제의식은 쉼없이 발동한다. 기내식 중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빔밥에서도 고추장을 ‘Gochujang’ 대신 ‘ Korean Style Hot Pepper Paste’라고 쓰인 걸 보고 가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추장을 설명하는 영어표현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왜 한국 고유의 음식명을 브랜드화해서 표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기내식 제조회사에 편지를 보내 이의 시정을 요청했고 그의 뜻에 공감하는 네티즌들의 참여에 힘입어 고추장의 영어표기 제품이 출시되도록 했다.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할로윈 퍼레이드에서도 강우성 씨의 열정과 창의성은 돋보였다. 세계 최대의 할로윈 행사인 맨해튼퍼레이드는 세계캐릭터들의 종합전시장으로 천문학적인 캐릭터산업의 중추(中樞)역할을 맡고 있다. 할로윈 행사에 일본 중국의 캐릭터는 오래전 뿌리를 내려 관련 의상과 소품들이 판매되고 있지만 한국의 문화 캐릭터는 단 한 개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지난 여름 한국에 들어가 SBS방송국에서 고구려 장수들의 의상을 십수점 대여하는 한편 처녀귀신과 저승사자 등 우리의 전통문화 캐릭터들을 꾸며 할로윈 퍼레이드에 등장시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수백만원의 비용을 네티즌들이 자발적인 모금운동으로 참여하고 NYU 한인학생회와 뉴욕한인회 등 많은 이들이 한 마음으로 지원한 것은 의미있는 또다른 성과였다.
이같은 행사가 정례화될 경우 내년부터는 본국 정부도 공식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단다. 2011년에는 제2, 제3의 강우성같은 열혈인재들이 나타나 코리아의 브랜드를 널리 알릴 멋진 프로젝트들이 기획(企劃)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