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추본 광복80주년 특별포럼 개최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불교독립운동기념관 건립과 금강산 마하연 선방 복원(復元)을 해야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태효스님)가 11일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포럼 ‘일제강점과 분단의 역사를 넘어, 평화와 통일로!’를 개최했다.
동국대 학명세미나실에서 열린 포럼은 1부에 김광식 전 동국대특임교수가 ‘불교독립운동의 연구성격-회고와 전망’ 특강을 했고 2부 토론은 이창희 동국대북한학과 교수의 사회로 김성연 동국대 K학술확산연구소 연구초빙교수, 김진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참여했다.

민추본 사무총장 덕유스님은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남과 북 모두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선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제강점기 항거의 역사를 되새기고 분단고통을 성찰하는것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광복 80년과 분단 80년을 마주한 지금 독립운동에 참여한 스님 등 불교계 활동과 정신을 기억하고자 한다.언젠가 남북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해하고 헌신에 감사하며 펑화와 통일의 한반도로 나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인사말을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부총장도 인사말에서 ”민추본은 남북관계가 어려웠을때나 잘 풀렸을 때나 늘 불교교류 창구로서 실천의 중요한 기반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최근 남북관계의 어려움 있었지만 금강산 다시 갈 날이 1~2년안에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고 덕담을 했다.
특강을 맡은 김광식 교수는 근현대불교연구 권위자이자 불교구술사(佛敎口述史)의 개척자로 통한다. 특히 불교계 항일독립운동 자료가 거의 없던 1980년대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많은 논문과 연구책자를 출간한 주역이기도 하다.

김광식 교수는 “본래 저는 사회운동가였다. 1985년 독립기념관 건립 인연을 맺으면서 불교계 독립운동 자료가 거의 전무한 것을 알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당시 불교계의 관련 연구는 석주스님의 <불교근세백년>(1980)과 임혜봉의 <친일불교론>(1993) 정광호의 <근대한일불교관계사연구>(1994) 정도였다. 이같은 배경엔 6.25전쟁에 따른 자료소실, 정화운동 과정의 분규, 종단사찰의 무관심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동국대 도서관 등 자료를 찾기 위해 수없이 발품을 판 김광식 교수의 첫번째 연구성과는 1996년 <한국근현대불교자료전집>(69권)과 <한국불교사연구>로 나타났다. 2001년엔 일제하 불교계 독립운동의 전개와 성격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학술논문도 게재했다.
김광식 교수는 “국가보훈부가 선정한 국가유공자 1만7000명중 불교인은 110명 밖에 안된다. 그 이유는 독립운동을 한 스님들이 대부분 신청할 후손이 없었고 후배, 제자스님들도 관심이 적어서 국가 등록이 실제보다 적어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불교계 항일운동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선 독립운동의 성격을 폭넓게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일제하의 불교계는 선명한 항일투쟁노선(의병과 국채보상운동. 제주법정사항쟁, 3.1운동, 임정)을 비롯, 저항노선(식민지불교체제, 사찰령반대, 일본불교비판)과 전통수호노선(선학원 유교법회 학인대회), 극복의 노선(임제종운동 종단건설 자주화의 지향, 종헌제정 대각교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교계 독립운동에 대한 저조한 관심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스님에 관한 2천여권의 서적과 논문 대부분이 문학류이고 불교이야기는 10%, 독립운동은 5%밖에 없다는데서도 드러난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에 대한 연구조차 지나치게 편벽(偏僻)되고 미약한 셈이다.
만해스님 못지않은 백용성스님도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용성스님은 민족대표 33인중 천도교와 기독교간에 갈등이 생기자 무아(無我) 사상으로 결속에 앞장섰고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들 것을 제안한 주인공이다. 3·1 운동 이후에도 불교 유물을 가장해 상해임시정부로 꾸준히 독립운동자금을 보냈고 1930년 대각사에서 윤봉길 의사에게 3귀 5계를 주어 불자로 삼았다.
김광식 교수는 2009년 은평구 진관사에서 발견된 3.1운동 태극기로 유명한 백초월스님을 93년 무렵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치열한 항일투쟁과 일심교 비밀결사를 벌였고 만주행 열차 ‘대한독립만세’ 낙서사건으로 체포돼 1944년 옥사한 백초월 스님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2002년 불교학보에 실은 바 있다.

그는 “30년전만 해도 백초월 스님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2009년 진관사 불단 벽에서 도자기와 태극기 독립운동 자료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당시 박원순시장이 해체 복원작업 하라고 예산을 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이 자료가 벽속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불교계가 찾아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불교의 항일역사와 함께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친일파 논쟁이다. 제가 항일운동가로 보는 스님을 어떤 이는 친일파로 본다. 논쟁이 많다. 1940년대초 불교의 독립운동과 친일의 접점이 교차하는 특수한 상황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표 사례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5년 독립운동가였던 9인의 스님을 친일대상자로 선정한 일이다. 이종욱스님은 3.1운동과 임시정부에 가담했고 일제하 종무원장과 월정사 주지를 지내면서 군자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일제말기 4년간 총무원장을 지낸 일때문에 친일파가 됐다.
또 부산 범어사 소속으로 3.1운동 시위를 주도한 허영호는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追敍)됐으나 일제말기 학병권유 강연을 하는 등의 친일활동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한편 다솔사 주지였던 최범술 스님도 3.1운동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으나 2005년 일각의 친일승려 주장으로 유족이 10년간 소송투쟁을 벌여 독립운동가의 명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독립유공자에서 친일행위자로 전락한 경우, 대부분 후손이 없거나 관심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제가 탄원서를 쓰고 논쟁도 많이 했지만 쉽지 않다. 독립운동가는 만들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힘들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김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 불교독립운동의 개념과 범주 재검토 ▲ 불교독립운동의 자료수집 및 자료집 발간 ▲ 불교독립운동사 개설서 발간 ▲ 불교의 항일과 친일 논란 병행 연구 ▲ 불교항일운동 대중강연 홍보활동 ▲ 30~40대 연구자 육성 등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조계종단에서 불교 독립운동기념관 건립과 금강산 마하연선방 복원을 해야 한다고 당부해 시선을 끌었다. 그는 “범어사 수덕사 통도사에 성보박물관이 다있는데 불교미술 탱화 불사만 전시한다. 불교독립운동 내용도 모르고 자료가 있어도 전시 안한다. 불교독립운동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불교의 통일협력사업으로 금강산 마하연 선방을 복원해야 한다. 효봉스님 성철스님 등 큰스님들이 수행, 조계종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곳을 복원하면 종단이 강조하는 선 수행도 알릴 수 있다. 송광사 해인사 범어사와 같은 큰 사찰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복원을 위해선 학술자료부터 모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만날때를 대비해서 전달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성연 교수는 “김광식 교수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조건을 보면 기준이 3가지다. 최소 6개월이상 독립운동, 그로인해 3개월이상 옥고(獄苦) 치른 기록이 있어야 하고 작고시까지 행적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접적 독립운동도 광의의 독립운동인데 이 기준엔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독립유공자가 되기위해 일제기록이 필요하다는게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경순 학예연구사는 “30여년전부터 수많은 논문저술을 생산하신 김광식선생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후학들도 비집고 들어갈 새로운 관점과 주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삼일운동도 사찰별로 일어난 만큼 불교도의 집단적인 구국운동을 집중 조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제말 일부 친일행위에 대해선 불교계가 반성하고 참회하는 단계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마지막 토론자인 김진환 교수는 “일제하에서 불교계가 결코 침묵하고 지내지도 않았지만 자격지심(自激之心)을 가질 필요가 없다. 기독교계열은 일본도 신경쓸 수밖에 없는 서양선교사라는 독립운동의 든든한 배후가 있었다. 우리 불교계는 제2의 독립운동인 통일운동에서 일등을 하자.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은 분리될수가 없다. 통일이 안되면 영원히 독립이 아니다. 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 교수가 얘기했듯이 남북을 하나의 민족으로 연결하는 끈은 언어, 혈연이 아니라 구한말이후 우리가 겪은 일제식민지배 고통이다. 그 경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연결해주는 지표다. 고려인 조선족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들은 증언의 주체다. 남북이 연대해서 일제식민지배를 청산하고 마지막으로 불교가 잘하는 위령과 천도를 하자. 독립운동가 선양발굴도 중요하지만 해방직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등 이름모를 희생자들에게도 눈을 돌리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회자인 이창희 교수는 “김교수님의 돋보이는 연구중 하나가 일제가 사찰의 흐름을 장악한 가운데 우리 불교계의 자주적 활동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봐야한다는 부분이다. 비밀결사적으로 진행됐고 스님과 신도들의 피해도 났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 김광식교수님이 마하연선방 복원도 과제로 제시해주셔서 토론이 더욱 풍성하게 된 것 같다”고 공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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