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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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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나오세요..봉화마을에서

그의 좌절에서 희망을 찾는다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16-03-20 (일) 11:20:39

한국일주마라톤 스물세번째 이야기

 

국토일주순례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일정표를 만들었고 또 매일 아침 출발할 때나 시시때때로 지도를 본다. 그리고 진장환선배가 매일 갈 길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서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한다. 그래도 정확한 길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든 길이 헷갈리고 애매할 때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무한테나 물어볼 수가 있어서 길을 잠시 잘못 들어도 금방 다시 찾을 수가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길을 물을 사람이 있어서 좋다.

 

김해공항의 공군관사에서 출발하여 다시 낙동강의 둑길을 따라 올라와 김해시로 들어서면서도 나는 수도 없이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오늘 일정 중에는 수로왕릉과 노무현 전대통령모소 참배가 있다. 묻고 또 물어서 어렵사리 수로왕릉을 찾았다.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김씨의 시조인 수로왕릉은 2,000 년이 지났지만 산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능 주변엔 왕의 영화와 함께 순장(殉葬)된 시녀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왕릉의 기세는 높은데 가야의 역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왕릉은 역사가 햇빛 속에 실체를 드러낼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가야사는 철의 제국으로만 알려졌지만 우리역사에서 많은 부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어쩌면 가야 역사가 우리에게 엄청난 자긍심(自矜心)을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발걸음을 돌렸다.

 

진영으로 들어서니 어린아이 머리만큼씩이나 큰 감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고 길가에 단감을 파는 행상들이 100 m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몇 사람은 나를 세워서 그 주먹보다도 큰 단감을 먹어보라고 주고 먹고 나니 한보따리씩 싸준다. 명품 단감이 익는 마을 진영에 인심도 익어가고 있다. 커다란 단감이 달기도 하다. 단감을 받아서 챙겨 넣으니 손수레가 휘청거릴 정도이다. 이것이면 며칠 동안 비타민 C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봉하마을에 들어가는 길에는 노랗게 익은 벼와 노란 꽃과 노란 바람개비가 늘어서 있다. 길은 잘 닦여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 한적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자랄 때 여기가 얼마나 오지(奧地)였는지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렇게 호젓한 마을에서 한 점 티 없이 순박하게 자라셔서 바보소리 들으면서 의연하게 살으셨나보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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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꿈꾸었지만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해 시대와의 불화를 자초(自招)한 슬픈 지도자이다. 저 왼편으로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부엉이 바위에 서있을 때까지 그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 위에 서있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온갖 비애가 교차했으리라. 그리고 한숨 한 번 쉬고 거기서 뛰어내렸을 때 그는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느 시대건 사회개혁과 국론통합은 그 사회에 부여된 이중적 과제이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개혁과 함께 의식개혁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데 실패를 했다. 항해를 위해서 방향을 잘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배 안의 모든 선원을 하나로 묶는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그만큼 사심 없이 역사의 나침판을 바로 본 지도자도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귀감(龜鑑)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 진보는 혁명에 의해서이기보다는 끝없는 누적(累積)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는 길을 잃어버렸을 때 방향을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큰 별임에 틀림없다.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 개혁과 혁신은 중요하다. 때로 개혁과 혁신은 안정을 보다 중시하는 보수적인 방법으로 때로 변화의 속도를 중시하는 진보적일 수도 있다. 보수와 진보를 때에 따라 적당히 버무려 가며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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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현실적인 좌절을 그의 묘소에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선구자들이 추구하는 개혁정신이 당대에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숭고한 정신은 후대들의 가슴에 불씨로 옮겨 붙어 미래의 시대를 열어가는 횃불이 되는 것이다. 원대한 꿈을 가졌지만 실패한 지도자일수록 자기 무덤 속의 불씨를 후대 사람들이 가져가기를 원할 것이다. 시대와 불화하는 선구자(先驅者)가 있기 때문에 미래는 더 희망적이다.

 

낡은 지배이념의 골리앗 같은 큰 권력의 정중앙을 향해 당당히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치던 그의 모습에서 희망의 빛은 뿜어져 나온다. 조광조의 개혁이 실패하듯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그을 개혁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모색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기운은 이 국토 안에 힘차게 흐르고 있다. 역사의 역설(逆說)은 실패한 사람에 의해 더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재 속에 불씨로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살아나서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우고 만다. 새로운 시대의 문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국민 다수에게 정신적 물질적 풍요를 보장할 수 있는 확신을 주어야한다.

 

특권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가신 분의 묘소를 찾는 마음은 먹먹하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 밀짚모자 아래 노란 꽃 같은 미소만이 그리운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솔직하며 어린아이처럼 나약한 모습으로 불의와 강건하게 맞서던 모습이 그립다. 그런 분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가 부끄럽다. 내가 돌아가신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參拜)하는 것은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가 꿈꾸었던 이상세계를 되새기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세월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마음의 불씨를 살리고 마음과 마음을 묶는 줄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꿈은 더 많은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의 향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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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앞에서 마산에 사는 강윤중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외로이 달리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바쁜 일정을 나누어서 먼 길을 왔다. 묘소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평일인데도 참배를 하러 나왔다. 묘소는 초라하지만 그 분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귀한 한마디 한마디가 새겨진 박석(薄石)들로 귀하게 꾸며졌다.

 

막걸리를 한잔 따라드리고 싶었는데 그건 허용이 안 된단다. 그분은 같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 막걸리 맛이 좋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국화 한 송이 헌화(獻花)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 자리에 서서 머리를 숙이고 있으니 몸이 뜨거워졌다.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갈증인지 성욕을 느낄 때의 뜨거움인지 불의를 보았을 때의 비분강개(悲憤慷慨)인지 알 수 없는 마그마처럼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서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逢着)했을 때 끝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화두(話頭)를 던진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가? 무엇을 찾아 달리는가?’ 달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뜨인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으며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모든 아름다움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다. 달려가서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벽과 성벽도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때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때 길을 물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속으로 ‘대통령님 나오세요!’를 외쳤다. 봉하마을을 나서는 기분은 사랑하는 사람과 밀애(密愛)를 나누고 나오는 기분이다. 아련하고 달콤한 기분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깊게 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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