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고기잡이를 나갔던 배가 만선 (滿船)을 했는지 아침 햇살을 가르고 물결을 가르고 쏜살 같이 들어온다. 방어리 조그만 어촌마을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엊저녁과 오늘아침은 민박집 아주머니가 준 추석음식으로 찌개를 끊여먹었다. 추석음식에 생선이 많았던 것도 특이하다. 어제부터 포항에 사는 최성렬씨가 오늘 동반주를 할 테니 숙소를 알려달라고 전화가 왔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명이 나와서 아침에 조금 같이 뛰어주려니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누군가가 함께하여 내 발걸음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이윤희박사에게서 이런 사람들이 연락이 갈 것이란 언질은 받았지만 사실 어떤 팀인지도 몰랐다. 아침에 승합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데 열 명이나 내린다. 한 사람은 운전을 하고 쫒아오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열을 맞춰 내 뒤를 따라온다. 얼마 후 어색한 분위기가 가시자 한사람이 내 손수레를 넘겨받아 앞으로 치고 나간다. 이 팀은 포항 울트라마라톤 클럽이다. 최성렬씨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단 횡단 그랜드슬램을 다하신 분이라고 한다. 이연숙씨도 종단 횡단 다한 쟁쟁한 여자 분이고 나머지 사람들도 다 쟁쟁한 멤버들이다.
우리들은 포항의 해병대 훈련병들도 울고 갈 정도로 보무도 당당하게 월포, 진포해수욕장을 다 지나갔다. 휴식시간에는 경관이 빼어나고 그늘이 좋은 곳을 잡아 미리 준비한 송편과 산적 부침개를 먹으며 막걸리도 한 잔씩 마셨다. 이 정도 되니 마라톤은 더 이상 빡센 운동이 아니고 유희(遊戲)가 되어버렸다. 유희를 즐기면서 건강도 챙기고 우정도 나누고 빼어난 경관도 감상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바다가 뭍으로 들어와 영일만으로 감싸져서 거친 파도는 이곳에서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 험한 바다 위를 떠돌던 배들도 쉴 곳은 필요하다. 쉴 때는 쾌적하고 안락한 곳이라야 한다. 우리들은 영일만항을 지나고 해를 영접한다는 곳 영일만 깊숙한 곳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영일만은 참 아름답고 거대한 천혜의 항구이다. 수 없이 많은 배들이 둥지 위에 깃든 새들처럼 안락하게 쉬고 있는 풍광이 그대로 포근한 한 폭의 유화 그림이 된다. 나에게 달리기는 항구와 같은 것이다. 나는 달리면서 영혼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쉬게 한다. 58년 먼 바다에 나가서 험한 파도 다 견디며 항해해온 내 삶도 잠시 쉬면서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거친 파도를 넘어서 드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정박한 것이다. 포스코와 해병대로 상징되는 포항시로 접어들어 형산강을 지나고 해수욕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나왔다. 물결이 잔잔하여 세계군인체육대회 요트대회가 여기서 열리는 모양이다. 우리들은 어시장으로 들어가 성진횟집에서 물회를 먹었다. 물회도 가는 곳마다 재료가 다르고 맛이 다른데 이 집 물회 맛 정말 끝내주게 좋다. 서비스도 많이 나와서 나는 배터지게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 철강 산업을 이끈 포스코를 지나는 데에만도 한참이나 걸렸다. 거대한 기업이다. 철강 산업이 우리나라의 건설과 조선, 자동차 산업까지 이끌었으니 경제발전은 근간(根幹)이랄 수 있겠다. 그리고 다시 해병대 사령부를 지났다. 연오랑 세오녀 전설이 있는 도구해수욕장을 지나 임암까지 45 km를 뛰었는데 누구하나 힘든 기색이 없고 덕분에 장거리 훈련 잘 했다고 내게 인사를 한다. 우리는 서로 대단한 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헤어질 때 한사람 한사람 힘껏 포옹을 해주었다. 내게는 아직 미대륙횡단을 하면서 농축한 특별한 기가 분명 있다. 이 기를 배터리 점프하듯이 나누는 의식이다. 허영환, 이천국 한미숙, 함창호, 최성열, 김진미, 전해광, 이창훈, 조형연, 이연숙이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리자 영일만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