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싹은 양계장에 들어온 뒤부터 알만 낳으며 철창 속에서 갇혀 살았다. 잎싹은 마당에 사는 암탉이 앙증맞은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뒤부터는 남모르게 꿈을 꾸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알을 품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아이와 함께 넓은 세상을 활보할 수 있다면....’
달릴 때 몸의 움직임이 최고에 이르면 정신세계도 최고에 이르게 된다. 언제부턴가 나는 최고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먼 길을 끝없이 달리는 꿈을 꾸었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알을 언제나 무정란(無精卵)으로 낳기만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아 품어서 병아리로 탄생시켜서 병아리들과 함께 넓은 세상을 활보하는 꿈이다. 나의 달리기는 내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알들을 부화시키는 행위이다. 들판에는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복판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소용돌이친다.
축산에서 아침식사를 같이하고 두 분 선배님들과는 작별을 하고 영덕 블루로드 구간을 달리기 시작한다. 어제 술도 한 잔하고 늦게 잠이 들어서 일어날 때는 몸이 뻐근했지만 달려서 몸이 달구어지니 달릴 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구항에 도착했다.

젊은 외국인 남자 하나가 배낭을 메고 지나가다가 내 손수레 앞의 1,879 km 사인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올린다. 자기는 부산에서 속초까지 도보여행을 하는데 여기서 동해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우리 바로 앞에 있는 바다를 우리는 동해라고 부르는데 아마 동해시를 물어보는 것이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는 내 손수레 옆에 매달린 운동화 두 켤레를 보며 자기 등산화 뒤축을 보여준다.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새 것이었는데 이렇게 닳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해파랑길이 너무 아름답다고 연신 엄지손가락을 올려댄다. 그는 다니던 직장에 휴직서를 내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그는 속초로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부산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강구에는 대게 홍게 식당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추석고향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게 맛을 보려는 차량행렬로 좁은 재래시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극성스럽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냄새가 나서 좋다. 거기에는 잘 포장된 상품이나 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날 것 같은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말만 잘하면 한 움큼 더 주는 인심도 있고 가격을 깎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강구를 조금 벗어난 곳에서 신용우씨를 만났다. 그는 걸어서 전국일주 여행을 하는데 코스가 나와 거의 비슷하다. 김포가 집인데 거기서 시작해서 임진각을 거쳐 전곡 인제 원통을 지났는데 진부령을 넘어 고성까지 가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28일이 걸렸고 나는 16일이 걸렸다. 교장선생님을 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는 도보로 전국일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달려서 앞질러 나갔다.
장사해수욕장 쯤 다와 가는데 아까 만났던 신용우씨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내가 조금 전 나무그늘에 쉬다 왔더니 걷는 사람이 내 앞장을 선 것이었다. 다시 만났으니 그냥 헤어지기도 그랬고 점심때가 되어서 허기(虛飢)도 지고하여서 우리는 같이 식당으로 갔다. 그는 이 거사를 치루기 위하여 은퇴 몇 년 전부터 음모를 꾸미다가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텐트와 여러 가지를 배낭에 매달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아내를 불러서 다 보내고 간단하게 옷 몇 벌만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젊은 날이어도 좋고 은퇴를 한 이후라도 좋다. 삶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겠지만 길 위에 나선 세 남자는 치열하게 답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자기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알들을 부화(孵化)시켜서 함께 세상 밖으로 활보하고픈 꿈이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