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다를 좋아하긴 한다. 내가 사랑에 마음 졸여할 줄 안다. 푸른 물결을 사랑하고 그 물결이 파도가 되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면 나도 이빨을 드러내고 환성(歡聲)을 지르고 싶기도 하다. 쉴 때마다 솔밭사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면 무엇인가 꽉 차오르는 충만함을 가진다. 그리고 난 가끔 그윽이 풍겨오는 남자의 향기에 정신 못 차릴 때가 있다.
멀리 떨어져있던 가족들도 한자리에 다 모이는 추석에 26 년 만에 귀국하여 같이 못하는 마음이 휑하다. 그 뻥 뚫린 가슴에 한줄기 바닷바람이 지나간다. 후포항에는 추석이지만 어촌의 분주함이 있다. 이제 막 제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동네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하고 지나가는 내게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고기가 낚싯줄에 걸려 올라오면 팔딱팔딱 뛰고 아이들은 좋아서 팔딱팔딱 뛴다. 오징어를 건조대에 거는 아낙네들의 손길도 분주하고 어구(漁具)를 손보는 어부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달리며 왼쪽을 바라보면 바다풍경은 유화 그림처럼 색상이 또렷하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구름이 산허리에 걸친 태백산맥의 모습이 수묵화의 농담(弄談)처럼 아련하다. 고래가 하얀 물줄기를 뿜는다는 고래불해수욕장은 기나긴 백사장이 에머랄드빛 바다와 함께 울창한 해송으로 둘러싸여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고래불해수욕장을 지나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소리의 울림이 들려 귀를 쫑긋해본다. 다시 들으니 내 이름 같다. 세 번째 소리는 분명 ‘강명구’하는 소리였다. 런클 3 대 회장님을 역임하신 김승기형님이 고래불해수욕장에서 그 헤라클라스 같은 몸을 드러내고 선탠을 즐기면서도 내가 지나가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리신 거다. 우린 함께 대진항까지 동반주(同伴走)를 하고 가서 점심으로 물회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동생 가족이 또 성묘를 마치고 찾아왔다.
헤어지고 다시 홀로 고개를 넘으며 이제 저물어 가는 햇살 아래 달려서 축산항을 빠져나오려는데 런클 6대 회장님을 역임하신 고재목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서 만나서 저녁이나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김승기형님에게도 전화가 왔다. 더 가면 강구까지는 멀고 중간에는 잠자리도 그렇고 식당도 마땅치 않으니 다시 축산항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오늘 목표는 조금 못 채웠어도 참 잘 됐다. 슈퍼문 아래 혼자서 저녁을 먹을 것도 초라하고 가슴이 휑했는데 나그네 길에 멋진 남자들과 함께 저녁을 하게 되다니 대단한 행운이다. 발길을 돌려 축산사거리 평상에 모여 있는 사람들 옆에 앉아 기다렸다. 사람들은 평상에 모여앉아 재잘대고 갈매기들은 갯바위에 모여 앉아 재잘댄다. 나는 그들이 건네주는 맥주한잔을 시원하게 마시며 그들의 나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식탁 위에는 영덕대게 세 마리가 올라와 앉았다. 대구탕이 그 옆에 자리 잡았고 맥주 두 병과 소주 한 병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분은 멀리 봉화에서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오시고 한 분은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하다 추석휴가로 나오셔서 일부러 나를 찾아오신 고마운 분들이다. 사내 냄새 물씬 나는 두 선배와 그 냄새를 충분히 좋아할 줄 아는 내가 둘러앉았다. 우리는 달리기를 이야기 하였고, 통일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해파랑길을 달리면서 해파랑길의 매력에 흠뻑 빠진 흥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우린 노래방까지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