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 여인과의 만남에는 늘 호기심과 어색함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숙소에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신당공원을 만났다. 옛날 돌섬으로 미역을 따러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애랑을 만났다. 애랑은 신당에 모셔진 해신이 된 여인이다. 애랑이 죽고는 이 신남마을에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애랑을 꿈에서 본 덕배가 애랑의 원혼(冤魂)을 위로하고자 참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고는 덕배는 늘 만선을 하고 돌아왔다. 그 후로 마을사람들은 애랑을 위로하고자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다.
해신당공원은 소나무 숲 속에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남근 조각들로 가득 채워졌다. 외설(猥褻)과 예술(藝術)그리고 거친바다를 밭으로 여기고 사는 어민들의 애달픈 삶이 그대로 녹아진 공원이다. 애랑이와의 길지 않은 만남은 그야말로 호기심과 어색함으로 가득 찬 긴 여운을 남기는 만남이 되었다.
오늘도 수령제를 포함해서 몇 개의 고개를 넘는지 모르겠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고개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배가 한 척 쏜살같이 항구로 들어온다. 밤새 조업을 하고 만선을 하고 들어오는 것 같다. 바람이 고개를 넘느라 수고한 몸을 위로해준다. 이제 경상북도 푯말이 보인다. 강원도 여행은 끝났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는 죽면에 들어서니 대나무 숲이 아름답다. 죽변항이 영덕대게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덕은 항구가 아니고 도시여서 죽변이나 강구 쪽에서 올라오는 대게의 집산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도심을 지날 때 오백 년 묵은 향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데 옛날에 울진에 있던 것이 파도에 떠밀려와 죽변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울진은 금강송 군락이 여기저리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장대함과 붉은빛으로 마력을 뿜어내는 금강송의 자태(姿態)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 절대적이고 숭고한 아름다움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목탑과 같아서 저절로 합장(合掌)하고 배례(拜禮) 를 하게 만들었다. 금강송 숲 속은 태백산맥에 살았을 호랑이들의 생활의 터전이었을 것 같다.
런클 멤버 중에 홍영환씨가 아는 누님에게 부탁해놓았으니 울진에 가면 그 집에 가서 자고오라고 연락이 왔다. 전화를 걸어 소방서 앞에서 만나 손수레는 소방서에다 맡기고 옷가방만 들고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태백산맥 자락이 시작되는 아마 끝나는 고즈넉한 마을에 별장 같은 아담한 집으로 안내를 받아서 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으므로 몸을 먼저 씻는 동안 저녁상이 차려졌다.
마당 한가운데 식탁 위에 삼겹살과 뜰에서 기른 야채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막걸리가 반 병정도 채워진 병이 놓여 있었다. 오전에 애랑이와 썸을 타고 온 나는 산 너머로 해 저무는 마당에 낮선 여인과 약간의 호기심과 약간의 어색함을 가지고 마주앉아 낮선 남자에게 최고의 호의를 전혀 어색함 없이 베푸는 모습에 감동하며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의 두 사람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서 담갔다는 막걸리를 곁들이니 금세 어색함은 사라진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니 자유로워지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성욕으로부터의 자유다. 아주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그 완전하지 않은 자유가 더 인생을 짜릿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그녀는 낼 새벽에 자기는 산행을 할 것이니 아침은 챙겨먹고 나가라고 한다. 오늘 저녁에 늦게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오니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내일 아침에 소방서까지 모셔다 드릴 거라고 한다. 담근 막걸리라 딱 세 잔에 취기가 돌아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곤한 나그네의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