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집에서 출발할 때는 안개비가 내려서 이 정도면 체온으로도 마를 것 같아서 그냥 출발하였는데 조금 달리려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한동안 비를 맞고 달리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비옷을 입었다. 비옷을 입으니 달리는데 불편하다. 이제 시내를 벗어나서 오분리를 지나니 다시 해안길로 들어섰다. 비에 적은 바다와 비에 젖은 태백산맥 준령이 또 다른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었다. 내 마음도 비에 젖어 낼모레가 추석인데 길거리는 하염없이 달리 마음이 처량하다.
풍성한 계절이다 논에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밤나무에는 밤송이들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나무들은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 많은 부모처럼 힘겨워보였다. 매년 이맘때면 한 해 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고는 슬퍼지곤 했다. 나는 떨어진 밤과 감을 몇 개 주워 담았다. 올해는 떨어진 밤과 감이 몇 개 주워들고 보니 그래도 예년에 비해서 풍성하다.

이제 비도 그치고 맹방해수욕장에서 아침에 여동생인 싸준 도시락을 펼쳐 먹었다. 커피도 한 잔 끊여 마시고 젖은 옷이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옷도 갈아입었다. 동해안 어디를 가도 해송(海松)이 아름다웠지만 맹방해수욕장에는 해송이 숲을 이루었다. 그 해송 숲에 해송산림욕장을 매우 아름답게 조성해놓았다. 맑은 공기가 보약이다. 우리는 밥을 굶고는 한 달을 견딜 수 있지만 숨은 5 분도 안 쉬면 죽는다. 호흡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몸 속 깊은 곳까지 큰 호흡을 하면서 달리면 몸에 제일 좋은 것이다. 바다가 밤새 한번 정재해준 맑은 공기를 해송 숲이 다시 정화하여 피톤치드까지 함유해서 내보내는 공기를 마시면서 달리면 만병이 다 치유가 될 것 같다.
궁촌마을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릉이 있는데 왕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망국의 한과 망한 나라 왕의 뒷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여실히 모여주고 있다. 용화에서 시작되어 궁촌에서 끝나는 레일 바이크 코스가 오히려 볼만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폐철도를 이용하여 운동도 하면서 바다 정취도 만끽하게 하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오늘 코스는 고갯길이 상당히 많다. 다행히 비가 온 뒤라 기온이 조금 떨어지고 구름이 짙게 끼어 달리기에 날씨는 좋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내 손수레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그게 뭐래요?’하며 물어본다. 나는 ‘여기에 막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다 있어요.’하고 대답한다. 오늘은 가파른 언덕을 몇 개를 넘었는지 모르겠다. 언덕을 넘고 넘어 황영조 기념공원을 지나고 한국의 나폴리라는 장호항 근처에서 숙소를 구했다. 오징어를 줄에 매달고 있는 손길들이 바쁘다.
동해안은 일본열도와 함께 동북아의 지중해라 불려도 좋을 듯싶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과 빼어난 경관과 우아하기 조차한 소나무 숲과 풍부한 먹거리가 잘 발달된 교통과 항구는 지중해연안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통일이 되어 북한의 동해안까지 감싸 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겠다. 한때 열강들의 각축의 장이었던 이 바다가 평화와 번영의 바다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군인들의 철조망과 소초가 촘촘하게 둘러싸인 분단의 바다가 되어 있고 일본과는 독도와 동해라는 호칭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며 소모하는 에너지로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희망의 바다로 가꾸어나갔으면 좋겠다. 2천만 년 전 우리나라와 일본은 하나의 땅이었다고 한다. 유럽의 지중해가 문화교류의 장이었다면 동북아 지중해는 아시아의 새로운 번영이 시작되는 바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