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정상에서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려 새벽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5 시가 조금 못 돼서 눈이 떴다. 4시에는 일어나 5시에는 출발을 했어야 했다. 그래도 아침을 안 먹고 길을 나설 수는 없다. 구름도 바람도 쉽게는 못 오른다는 미시령 옛길을 손수레를 밀며 오르는데 공복(空腹)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부지런을 떨어보았지만 텐트를 걷고 정리를 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6 시에 출발하여 꼬부랑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침 공기가 쌀쌀하여 긴팔 옷을 입고 출발했으나 10 분도 안 되어 땀이 뻘뻘 나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옷을 반팔로 갈아입고 꼬부랑 고갯길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다행히 일요일 새벽시간이고 대부분의 차량은 터널로 통과해서 차가 없어 한적하고 좋았다. 힘들더라도 이 길을 택한 일은 아주 잘한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헛수고는 없는 일이어서 내설악의 운무(雲霧)가 짙게 깔린 은밀한 계곡을 욕정에 빠진 사내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쉽게 산 정상에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기회는 잃었지만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빵긋이 웃음 짓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정상에 거의 다가갈 무렵 갑자기 온 사방에 약초 냄새가 가득하다. 냄새만으로도 온몸의 독소가 다 빠져나가고 보약을 먹은 것처럼 활력이 난다. 그 힘으로 단숨에 산꼭대기에 오른다. 터널이 생기기 이전에 붐볐을 휴게소는 흉물처럼 버려져 있었고 옛길의 낭만을 찾아 온 연인들만 몇 쌍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그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느라 내게는 눈길 한번 안 주더니 한 사람이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사람들이 내게로 몰려든다. 나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자전거 팀까지 나는 사진촬영을 하느라 바빠졌다.

산을 조금 내려오다 보니 굽이굽이 고갯길이 장관이다. 저쪽으로 울산바위가 보이기 시작하고 속초 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도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길도 힘이 들다. 아까 산 위에서 내 나이를 물어보고는 자기가 누나라고한 아주머니가 준 포도와 사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오늘은 저 밑에 내려가서 속초의 물회를 먹으리라고 출발 전부터 계획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먹어보고 지금껏 못 잊는 그 맛을 찾아 가는 것이다.
속초해안에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허기지고 지친 상태였다. 물회집을 찾는데 물회집은 안보이고 이상한 식당만 보인다. 그렇다 물회집이 아니면 이상한 식당이다. 오늘은. 그러다 ‘물회’라는 사인을 보고 들어갔는데 물회는 없고 대게 전문점이란다. 이제 더 이상 물회를 찾으러 다닐 기운은 없다. 메뉴를 보니 오징어순대가 있다. 오징어순대로 내 허기진 순대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렇게 빡센 일정 중에도 한가로움은 있다. 속초 해수욕장을 조금 지나 바다가 보이는 솔밭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누었다. 미시령을 오르고 내리느라 지친 몸을 뉘니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다. 거의 일주일간을 태백산 준령(峻嶺)들을 넘느라고 내 몸이 고생이 많았다. 조금 있으니 개미가 내 몸 일주 마라톤을 한다. 아마 개미들도 남북평화통일기원 마라톤에 동참하는 모양이다. 조금 간지럽긴 해도 개미들의 마라톤을 방해하지 않았다. 바다내음과 솔향도 좋고 바로 옆 벤치에 앉아 소곤대는 연인들의 소리와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가 참 좋다.
이제 양양까지 왔다. 이제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는 무채를 썰고 할아버지는 그냥 앉아 있는 민박집이 보인다. 들어가 방하나 싸게 달라고 부탁을 한다.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조금 있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한다. 꽁치조림에 명란젓 멸치볶음 그리고 아욱국이 맛있게 차려져 나왔다. 나는 가만히 할머니 손에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드렸다.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오래 여기서 사셨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나서 지금껏 산다고 한다. 25에 이장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껏 이장을 한다는 것이다. 10 살 때 6.25 전쟁이 났다고 한다. 아직 38선 경계비를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 때는 여기가 이북 땅이었을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는 이북서 국민학교를 다니셨겠네요? 이산가족은 없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