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으니 별빛도 밝다. 별빛과 달빛만이 어둠과 맞서는 밤에 내 눈동자도 어둠과 맞서고 있다. 간절한 소망이 있는 자의 눈빛은 어둠이 이기지 못한다. 이제 추석이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눈썹 같은 달빛이 처량하다. 전쟁기념비 옆에는 나만 자는 것이 아니라 중년의 한 부부가 수돗가에서 밥을 해먹고 자고 있다. 그들은 동해안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부터 시작하여 강화도 통일 전망대까지 땅굴이나 전쟁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열흘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임진각으로 들어설 때는 덤덤했는데 전쟁기념비 옆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 길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 수많은 한 맺힌 발걸음들이 여기까지 왔다가 피눈물을 흘리며 발걸음을 돌렸는데 마음 편하게 발걸음이 돌려지지 않는다. 할머니와 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은 영혼(靈魂)이라도 고향땅을 가셨는지!

임진각을 뒤로하고 나와 여우고개에서 좌회전을 하여 국도를 따라 적성으로 향하다 국도가 너무 차가 쌩쌩 달려 조금 더 달리더라도 ‘평화누리길’이라는 자전거 전용도로 빠졌는데 길이 임진강에서 끊겨서 한참을 돌아 나오는 수고를 했다. 덕분에 임진강에 땀에 절은 내 발을 씻을 수 있었다.
길을 잘 못 들어 고생하는 사이 점심때를 놓치고 갑자기 허기(虛飢)가 져서 고생을 하다가 파평 삼거리에서 순두부 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안주고 순두부와 비지 그리고 양념장만 주는데 맛이 정말 좋다. 파리가 왜 이렇게 많으냐고 주인아주머니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했더니 파리 코가 십리는 냄새를 맡는단다. ‘파리가 맛있는 건 귀신같이 알아요!‘
전곡을 지나 적성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백운계곡을 향해서 달려간다. 이제 37 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니 한탄강이 보인다. 한탄강은 적성에서 임진강으로 합류한다. 이 아름다운 강이 수 없는 젊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격전지라니 너무나 섬뜩한 아름다움이다. 한탄강의 지류(支流)인 영평천을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철원에 사는 이희석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밴드를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고 주로에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도평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다가 월드컵가든이라는 식당 앞에 커다란 나무그늘이 좋아 돗자리를 펴고 한 15 분 눕는다. 바람이 너무 좋다. 아기의 살갗처럼 부드러운 바람의 애무(愛撫)를 받으며 나는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매바위를 지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앞으로 도평삼거리까지는 4 km 정도 남았다. 벌써 거기서 기다린다고 한다. 몸은 지쳐가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응원을 하러 나와서 기다린다고 하니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지나다 보니 그 유명한 이동막걸리 공장이 옆에 보인다. 도평삼거리에 도착하니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펑삼거리는 백운계곡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여기서 9.2 km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한다. 이미 오늘 38 km를 달려왔다. 70 kg이나 되는 짐을 밀고 저 고개를 넘는 건 무리다. 거기다 정상에 오르면 잠자리도 마땅치 않고 식당도 없단다. 그동안 고기를 먹고 싶어도 모든 식당들이 일인분은 팔지 않아서 국밥만 며칠 먹고 다녔더니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이희석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테니 여기서 쉬시고 식사를 같이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는 연신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아마 사람들은 나처럼 모든 걸 잊고 훌쩍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러지 못하고 나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달리기가 나를 자유롭게 하였다. 몸이 건강하고 가벼우니 아음이 자유로워지고 잡념(雜念)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어디에도 달려가고 그 어던 것도 상상할 수 있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는 내가 선택한 최고의 즐거움이자 예술이고 신비이고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