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를 들어서서 달리는 이틀 동안 비가 계속 내렸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비는 대지를 축축하게 적셔줄 뿐 아니라 마음을 축축하게 한다. 비를 맞으며 뉴욕이 가까워지는 희열(喜悅)을 느끼며 달리고 있는데 경찰차가 쫒아와서 나를 세운다.
달리는 것을 방해해서 대단히 미안한데 누가 비를 맞으며 아기 유모차를 끌고 간다고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가 미안하다고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열정적으로 달리고 있는 나의 대륙횡단 마라톤에 뜻하지 않게 끼어들어서 미안한 마음을 그의 눈동자에서 읽고 있었다.
경찰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얼마나 서툴게 하는지 나는 보았다. 유아학대(幼兒虐待) 정도로 생각하고 신고한 모양인데 미국인들의 신고정신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야 했다. 얼마 전에도 맥도날드 앞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안에 들어갔다 나오니 아기를 유모차에 놓고 사라졌다고 신고를 해서 보안관이 출동한 적도 있어서 성가신 마음이 더했다.
경찰이나 보안관이 신고가 들어와서 나오긴 하지만 큰 도전을 하는 나를 격려해주거나 오히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곤 하지만 경찰하고 마주치는 일은 여전히 귀찮은 일이다.
비를 맞으며 유니온 시티를 향해 달리는 기분은 연어가 이제 자기가 떠났던 강의 지류를 찾아서 올라가다 푹포를 만나 힘차게 뛰어 올라가는 기분이다. 떨어지는 물을 박차고 올라가는 힘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없고서야 어디서 나오겠는가. 내 안에 생긴 알, 새로운 생명의 씨를 세상에 뿜어내야하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안지 않고서야 말이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외로움과 후회를 물리치면서 달리며 때론 육신의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을 넘어, 신의 영역 언저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 풍광(風光)이 다르고 사람 사는 인심이 다르고 대지에 흐르는 기가 다른 3,150마일 길을 달려오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사색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도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우여곡절과 무지한 고생을 통하여 최고의 휴가를 보냈다. 최고란 단어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존재하는 것 임을 알게 한 깨달음의 여행이었다. 삶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겠지만 삶을 응시하는 나의 두 눈동자는 내가 달려온 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얼마든지 최고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과의 만남이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최고의 속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앞질러 가야만 생존이 가능한 선착순의 길, 오로지 일등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길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주위의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는 수확(收穫)의 길이었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위로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결코 없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끝없이 세상을 달리고픈 꿈이 피어났고 환경에 대한 또렷한 인식이 새겨졌다.

나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온전히 바쳐진 4개월 여의 고귀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자신과 떨리는 맞선자리였다. 나와 교제를 하면서 나는 결코 나약하지도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모작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탯줄이 필요했다. 하늘과 대지에 연결하는 탯줄을 스스로의 배꼽에 연결하여 모든 낡은 에너지를 방전(放電)시킨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달리면서 내 안에 생긴 연어알 같은 희망의 씨를 세상에 뿜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꿈꾸고 상상하고 한발짝 한발짝 묵묵히 내딛으면서 실행에 옮겼고 이제 드디어 대장정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대기의 냄새도 뭔가 친숙하다. 비록 몸은 난파선에서 구조된 사람처럼 야위었지만 강인한 생명의 의지로 충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