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다섯 마리가 농부와 함께 호흡을 맞춰 먼지를 일으키며 쟁기를 끌고, 여인은 아이들과 함께 잡초를 뽑는 모습은 아련한 그림 속의 한 장면이다. 길에는 마차의 말발굽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탄 순박한 여인들이 거리를 지나다닌다. 백 일이 넘도록 달리면서 젊어진 나의 가슴은 순박하고 꾸미지 않았지만 맑고 정갈한 여인의 모습에 여지없이 반응을 한다.
몇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 속의 앳된 소녀가 텃밭에 물을 주고 있고 자그마한 가게 앞 좌판엔 금방 밭에서 따온 싱싱한 딸기와 멜론, 토마토 등이 놓여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다만 몇 마디라도 그들과 내밀한 대화를 꿈꾸던 나는 좌판에서 멜론을 하나 집어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서 중년의 여인이 사람의 기척을 듣고 나온다. 여자는 검정치마에 옅은 분홍의 검소한 옷이지만 아주 정결하고 깨끗해 보였다. 나는 안에서 아미쉬 스타일의 크림파이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물은 파는 것이 없냐고 물으니 물을 그냥 주겠다고 하여 빈 물병을 가져다 주었더니 돈통은 열어놓고 안으로 물을 가지러 들어간다. 나는 열려진 돈통에서 집 안에 잠금장치라고는 없는 주인의 평화로운 마음을 훔친다. 가게 안에는 생각과는 달리 냉장 진열대도 있었고 전기 계산기도 있었다.
밖에서 뛰어놀던 남자 아이가 낯선 방문객을 보고 뛰어들어왔다. 맨발에 전통적인 밀집모자를 쓴 아주 귀여운 아이다. 이들은 사진 찍는 일을 아주 꺼리기 때문에 여자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시험을 본 적이 없고 경쟁을 해보지 않은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담아 올 수 있어서 좋았다.
효율과 경쟁이라는 산업사회의 끝없이 돌고도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잠시 몇 달 동안 벗어난 것만으로도 정신이 이완(弛緩)되고 편안함이 찾아온다. 이들은 지적인 삶보다는 미적인 삶을 택했고,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필수적인 기본지식과 기술, 개별적 경쟁보다는 공동체 삶에 필요한 교육을 삶을 통해서 구현하고 있었다.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이 마을의 시간에 백여 일이 넘게 달리면서 나의 생체리듬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나의 발걸음 소리와 마차를 끄는 말의 말발굽 소리가 어울려 좋은 기분을 증폭(增幅)시킨다. 소울음 소리, 새소리, 벌레소리가 어울리면 욕망과 허세의 무게를 벗어버린 아주 가벼운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우리가 늘상 듣던 최고의 음악들이 경박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린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오는 21 세기 첨단 정보기술의 파도 앞에서도 함께 모여 즐겁게 살아가면서 느리게, 단순하게, 소박하게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땀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첨단 기술이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부지런하고 경건한 생활을 통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방향감각마저도 잃어버리고 거부할 수 없는 위협적인 속도 속에서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정신 없이 달려왔던 내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제자리이거나 뒤쳐진 뒷자리이기 일쑤였다. 이렇게 천천히 한발한발 달리니 이제 그렇게 광대한 미대륙을 온전히 나의 다리근육에만 의지해서 가로지르고 목적지 뉴욕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지금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강물처럼 굽이쳐 유유히, 봄바람처럼 아롱아롱 흐르는 아미쉬 마을을 지나며 과연 이 사람들이 대단한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지배력으로 따지면 전쟁보다도 강한 미국문화가 이들의 삶을 지배하지 못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