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그렇게 통일열사(統一烈士)가 되었냐고 비아냥거리면 나는 화를 내는 대신 당연히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본시 나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면서 국가와 민족의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맞다.
나는 지금 본의던 아니던 실업상태가 되었다. 또 무언가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중요한 시기를 맞기도 하였다. 지금껏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순응(順應)하며 아둥바둥 살려고 돌보지 못한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이기도 하다. 오십대의 나이에는 여행가방을 풀어서 정리할 때가 아니라 이제 비로소 설레는 마음과 호기심을 안고 진정한 인생 여정길에 나설 여행가방을 꾸릴 때이다. 지금까지는 살아남기 위하여 조금씩 자기를 지우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이기도 하다
노는 입으로 염불(念佛)을 한다는 말이 있다. 기왕에 하는 일 없이 노는 입으로 염불을 해서 해탈(解脫)을 이룬다면 그것은 최상의 시나리오이다. 내게 불어닥친 이런 공백상태를 활용하여 남북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면서 또 남과 북 모든 시민들과 공유를 하면 그것도 아름다운 일이겠다. LA에서 뉴욕까지 화석연료(化石燃料)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달려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은밀하게 꿈꾸어왔다. 57 세에 떠나는 멀고 긴 여행, 담대한 도전을 통하여 나도 내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사람으로 확인하고 싶다. 또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는 조국의 통일이 내가 떠나는 멀고 험한 길보다 더 멀고 험할지라도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훨씬 가까이 느껴질 것이라는 믿음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떠나기 전 나는 시시때때로 닥쳐올 위험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고있지만 지금껏 만나지 못한 세상과의 경이로운 만남의 감동이 그 두려움을 덮어버리고 만다. 달리면서 얻어진 무한한 상상력과 달리면서 튼튼해진 두 다리의 만남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꿈꾸어왔던 먼곳으로 끝없는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들판에는 세찬 바람이 멈추지 않고 바다에는 언제나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가운데에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열망이 끝없이 소용돌이친다. 우리가 어디서 온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디로 갈지를 알 수는 없다. 삶은 목적지가 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달릴 때 나는 매 몸에 시원을 알 수 없는 싱그러운 물이 흐르는 것 같은 환희를 만끽한다. 그 기쁨이 나를 끝없이 달리고픈 열망에 빠뜨리게 한다. 끝없이 달려서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대평원을 지나 거기서 보이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의 진지한 만남을 꿈꾼다. 대자연의 절경,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들을 동경하며 끝없이 달리면서 얻어지는 자기초월(自己超越)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고난(苦難)과 역경(逆境)이 오히려 생명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둥이라면 때로 삶의 어느 한쪽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더 큰 고난과 고통 속으로 자신을 던져넣어서 변화를 꿈꾼다. 명태가 따뜻한 햇볕과 눈 실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황태로 거듭나듯이 미대륙 횡단 마라톤을 하면서 사막의 햇볕과 록키산맥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내 스스로 융해(融解)와 응고(凝固)를 거듭하면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는 대자연의 영혼과 영매(靈媒)를 이루며 마라톤 작가로, 통일 운동가로 태어나기 위한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신내림굿 같은 것이다.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하여 내 가슴 속의 불씨와 사람들 가슴 속의 불씨가 서로 교통하는 통로를 찾고 싶다. 이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불씨에 풀무질을 하는 감동적인 문장 한 줄을 받아들고 싶다. 사막의 지는 노을과 깊은 산 속에 맺히는 아침이슬과 대평원의 지평선 저 넘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깊은 침잠(沈潛) 속에서 사유하며 큰 지혜를 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