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함에서 벗어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달리고픈,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동경(憧憬)이 나의 등을 떠밀어 나는 길을 나섰다. 달리면서 얻어지는 무한한 상상력과 달리면서 튼튼해진 두 다리의 만남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가졌던 먼곳으로 끝없는 여행을 가능하게 하여주었다. 달리는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의 자유를 느낀다. 최상의 자유를 느낄 때 어떤 목표도 사라지고 만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최고의 목표이고 삶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20 마일이 넘어서기 시작하면 몸은 파김치가 되기 시작한다. 테네시의 작은 산간마을 Fayetteville을 지날 때는 이미 30 마일이 넘어서기 시작했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서 흐느적거리고 있었지만 숲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생생한 바람에 손수레에 달린 태극기(太極旗)는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 태극기보다도 더 힘차게 어떤 여학생이 뒤에서 뛰어오더니 숨을 몰아 쉬면서 ‘아저씨, 한국 분이세요?’하고 묻는다. 뒤이어 그녀의 룸메이트인 멕시코 학생까지 헐레벌떡 달려온다. 자기 친구가 너무 반가워서 갑자기 뛰어가니 무슨 일인가하고 쫒아왔다.
태극기를 보자 유전자 속에서 섬광(閃光)처럼 일어나는 끌림이 있어 이것저것 생각 없이 내게로 달려온 것이다. 나도 이런 산간마을에서 한국 유학생을 만나서 반가웠지만 그녀의 얼굴은 분명 상기되었고 언어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내게로 전달되면서 나의 찡한 마음도 더욱 증폭(增幅)되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서 다시 무거운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뒤에서 차가 한 대 쫒아온다.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그 멕시코 친구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와서 같이 사진을 찍고 가자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식당을 두 개를 하는데 저녁식사도 하고 가라고 한다. 결국 나는 그 집에서 저녁식사도 하고 잠도 편하게 자고, 아침식사에 점심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나왔다.
그 바로 전에는 누가 차를 앞에다 세우고 나를 기다리더니 내려서 지나가다가 태극기를 보고 다시 왔다면서 자기는 DMZ에서 1년간 근무를 했다고 한다. 의외로 이번 여행에서 한국 근무를 한 미군 출신들을 많이 만났다. 많은 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서 인사를 나누고 격려를 해준다. 중국 뷔페에서 식사비를 내주고 나간 사람도 그렇고 이 분도 우정의 표시라며 저녁식사비를 건네주고 간다. 어떤 이들은 내가 불쌍해 보여서 식사비를 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국인들은 모험가라든가 탐험가들을 존경하고 대접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성의를 표하고 싶어한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기꺼히 받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길 위에서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음료수나 먹을 것을 건네주는 사람, 돈의 기부하는 사람,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사람 특히 어느 카지노호텔에서는 VIP 손님이 왔다고 장내 멘트를 하고 무료로 계산서를 주었던 일, 운동화 가게에서도 한 켤레는 무료로 하고 한 켤레만 계산서를 주었고 자전거 가게에서도 무료로 손수레를 고쳐주기도 했다. 식사를 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다른 분이 미리 계산했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오늘도 가게에서 커피 한 잔하고 작은 샌드위치를 샀는데 주인 할머니가 사과를 한 보따리 싸주신다. 많은 사람들이 나하고 기념사진을 찍자고 다가왔고 더러는 내 싸인을 해달라고 펜과 종이를 내미는 사람들도 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리니 아주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