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사랑의 세레나데이기 때문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대자연에서 소리를 내어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생사에도 관련된 것이다. 목숨을 내놓고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내가 고통을 넘어 부상을 넘어 달리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창가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끝없이 펼쳐진 길로 고통과 부상의 위험을 안고 뛰어든 것은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결핍(缺乏)을 채우기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이다. 인간이 생래적으로 결핍의 존재이라면 나의 달리기는 결핍을 채우기 위한 날갯짓이다. 이제껏 보지 못한 세계 낯선 세계로 나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한계 너머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한 모험이다.
Russellville은 호반의 도시이다. 물결은 평화로운데 물새는 잽싸게 물 속으로 날아들어 먹이를 낚아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매도 눈깜짝할 사이에 날아내려와 무언가를 채 간다. 들판의 소들은 그 큰 몸집을 채우기 위해 하루 종일 풀을 뜯는다. 대자연은 언제나 겉보기에는 평화로운데 알 수 없는 긴장 속에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토끼의 눈과 귀가 그렇게 큰 것은 항상 긴장 속에 놓여있다는 증거이다. 잠시 긴장을 늦추는 순간 생사의 경계가 바뀌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긴장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얻는 거의 모든 현대병의 원인이 긴장과 스트레스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긴장을 잘 다스리는 것이 비밀의 열쇠일 것이다.
우리의 몸은 우주(宇宙)와 같은 것이어서 천체과학자가 우주의 일부만 알듯이 의사도 우리 몸의 일부만 알고 있다. 우주의 신비와 몸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은 언제나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나는 나의 몸에 대하여 무한한 상상을 하면서 이 담대한 마라톤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나의 몸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무한한 잠재력이 있을 것이란 상상력에서 출발을 하였다.
달릴 때 몸의 움직임이 최고조에 이르면 정신세계도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최고의 정신상태를 유지하면서 먼 길을 끝없이 달리는 소망을 품었다. 최고의 정신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했을 때 몸에서는 어떤 변화가 오는 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처음 대장정을 시작하기 전부터 부상의 위험은 시작되었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 오른쪽 발목에 이상이 생겨서 출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영영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단지 사막을 며칠이라도 달리고픈 심정으로 출발을 했다. 출발해서 얼마 후에 왼쪽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그 때도 나는 거의 절망상태였었다. 그러나 생사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뛰어든 순간 몸은 스스로 최고의 방위 태세를 갖추어서 극복해 나갔다. 그때마다 나도 몸을 아기 다루듯이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였고 부상의 위협은 안으로 잠재해 들어갔다.
매일 자기 몸의 한계점을 넘나들면서 이렇게 장기적인 모험을 하면 면역력(免疫力)은 극도로 떨어지지만 긴장이라는 방위군이 나의 몸을 지켜주었다. 거의 매일 매순간 부상이나 병의 위협은 도적처럼 주위를 맴돌았지만 그래서 괜찮았다. 잠시 방심한 순간 부상을 얻었지만 생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비한 긴장이라는 것을 잘 이용하면 부상에서 회복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내주는 응원과 격려의 좋은 에너지도 나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나는 그 다리로 어제 29 마일 오늘 22 마일을 살살 걸어왔는데 더 악화되지 않았다.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미세하게 좋아졌다는 의미가 아닐까하고 나는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