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부터 비가 내리더니 폭풍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 문을 열어보니 천둥번개가 치면서 나뭇가지가 코요테 울음 우는 소리를 낸다. 천둥치는 소리와 번쩍이는 번갯빛에 다시 잠들 것 같지 않더니 피곤함이 그 요란함에도 다시 나를 잠 속에 빠져들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하늘은 잔뜩 심술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더 이상 비바람은 없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참 다행이었다. 어젯밤 그 비바람을 길거리나 야영지에서 마주쳤다면 그 수난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했다. 지금 있는 이 자리는 지난주 인명피해까지 낸 커다란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Tulsa에서 불과 20여 마일 밖에 안 떨어진 곳이다.
나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복권의 행운이 절대로 내게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또 같은 이유로 토네이도나 대지진 같은 대재앙도 내게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이런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재앙이 닥쳤을 때 무방비 상태가 되기 일쑤이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모하비 사막을 지날 때도 그렇게 고약한 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록키산맥을 넘을 때 폭설을 만나긴 했지만 그것도 밤에 모텔에서 잘 때였었다. 대자연의 정령(精靈)들이 나의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축복해 주는 것 같다. 꼭 간절히 필요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그렇다.
출발할 때부터 오클라호마 시티를 상징적인 '반환점(返還點)'으로 생각했다. 지리상으로 미중남부의 중심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면 반환점을 지난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을 지난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도 반환점에 못 미쳤다. 아직도 며칠을 더 가야 반환점이라고 생각하자 정신적으로 지쳐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힘들다는 생각 안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그저 하루 달릴 거리만 생각했다. 하루에 25 마일에서 30 마일 씩 앞으로 전진하는 재미나 성취감이 대단했었다. 갑자기 반환점이 아직도 까마득히 멀리 느껴진다.
항상 반환점을 지날 무렵이 가장 힘들다. 반환점을 빨리 돌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그렇다. 반환점을 지나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긴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이 생겨서 정신의 긴장도는 최고조가 된다. 이제 다시 긴장을 최고조로 유지해 반환점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내딛어야 겠다.
성공적인 장거리 달리기의 열쇠는 운동근육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는 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풍부한 산소와 영양을 근육에 공급하여 피로를 줄이고 운동능력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것이 심장과 동맥이다. 우수한 장거리 주자일수록 심장의 기능이나 부피가 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산소를 많이 함유한 혈액을 동맥으로 뿜어내는 좌심실의 비대(肥大)가 특징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의 부피가 커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좌심실의 비대가 나의 가슴을 더욱 벌어지게 만들었다.
나의 달리기는 반환점에 상관 없이 영원의 순례처럼, 강물처럼 유구하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미대륙횡단 마라톤의 완주도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달리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고 또 그 다음날 달린다. 나의 마라톤은 밟아보지 않은 미지의 땅을 찾아 강물처럼 바람처럼 달리는 멋의 극치(極致)이다. 달리는 것은 내 존재의 진행이다.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나를 찾는 것이라면 마라톤은 나의 종교(宗敎)이다. 무용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마라톤의 나의 무용(舞踊)이다. 모든 문학이 자기를 찾는 안내서라면 마라톤은 나의 문학(文學)이다. 나의 마라톤은 궁극적으로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진지한 몸부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