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기가 어렸을 때 종이로 만들어 놀던 바람개비처럼 잘 돌아간다.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끝없이 서있다. 이제 풍력발전기만 보면 겁이난다. 텍사스의 애드리안이라는 도시를 지날 때 26마일에 걸쳐 장엄하게 늘어서 있던 풍력발전기, 바보들이 아닌 이상 바람이 없는 곳에 그 엄청난 바람개비를 세우진 않을 것이다.
검정지빠귀 떼가 하늘의 구름처럼 거친 바람 속에 새까많게 몰려들더니 군무(群舞)를 펼친다. 하늘에 항아리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호리병 모양을 만들고 한 바퀴 돌더니 부채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 거센 바람을 뚫고 달리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는 엄청난 시련을 극복해야 했다. 바람은 늘 방향이 바뀌어 불어오지만 언제나 느껴지는 건 맞바람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으련만 언제나 느껴지는 건 오르막 뿐이다. 구릉(丘陵)이 많은 오클라호마 동부에서 다시 풍력발전기를 만나니 겁부터 났는데 아닌게 아니라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다. 바람개비나 풍력발전기는 바람과 마주보며 돌아간다. 바람과 마주서서 달리면서 나도 거친 바람과 고통의 에너지를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오클라호마에 들어오자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도시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해 한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뉴스를 리차드씨가 메시지로 알려주면서 토네이도를 조심하라고 한다. 36 번 도로에는 트레일러가 전복되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제 토네이도 시즌이 되었다. 토네이도는 봄에서 여름에 주로 발생하는데 이른바 ‘깔때기 바람’이라고 하는 회오리바람이다. 록키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과 멕시코 만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서로 성질이 다른 바람이 만나면 이렇게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야 만다. 그러니 성질이 다른 바람을 만나면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옳고 네가 그름을 따져봐야 회오리 바람만 일어난다. 토네이도는 내부의 기압이 낮아 회오리 바람 안에 들어간 물체는 무엇이든지 위로 날려버리고야 만다.
오클라호마 시티의 외곽 도시 유콘에 들어서니 커다란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주말을 맞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보트를 타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텍사스를 지나 오클라호마로 들어오니 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울에는 물이 흐르고 시궁창들도 있고 호수도 있다. 물가에 나온 사람들 표정이 편해보였다. 물가에 있는 집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오클라호마 시티를 다 보기도 전에 오클라호마 시티가 아름답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다운타운으로 들어섰다.
서울이나 뉴욕에 살던 내게 오클라호마 시티는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LA를 떠나서 이제 미대륙횡단의 반환점이 되는 도시이면서 미중남부의 물류의 중심 도시이다. 도시는 관광객들로 분주하고 나의 조금은 괴상한 행색에 같이 사진 찍자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나는 지친 몸으로 기필코 한국음식을 먹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음식점을 찾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시내 중심부에 있는 줄 알고 조금조금 더 간 것이 오클라호마 시티를 지나 미드웨스트까지 가서 한국음식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나는 주문하면서 아예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
오클라호마 시티는 아름다웠다. 물이 많아서 아름다웠다. 물은 사람의 얼굴에 미소와 같은 것이다. 마른 개울만 보다가 개울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평화가 온다. 무엇보다도 외곽도시의 중산층들의 삶이 평화로워서 아름다워 보였다. 어수선한 빈민가가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