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한 무리의 새들이 마치 해의 둥지에서 자고 일어나 솟아오르듯이 태양의 방향에서 날아온다. 날개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새들은 내 머리 위를 날아갔지만 그 잔상(殘像)은 눈으로 들어와 가슴에 깃들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아주 잠시 해를 마주 볼 수가 있다. 매일 아침 해를 마주 보면서 뛰며 해와 정분(情分)을 나눈다. 눈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열린 마음으로 불덩이 같은 태양이 들어 와 자리를 잡는다. 태양을 품은 마음은 무엇을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넘친다. 늘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가슴이 설렌다.
오늘도 나는 태양의 애무(愛撫)를 온 몸으로 느끼며 환희에 젖는다. 새벽에 떠오르는 봄 햇살과 마음껏 사랑을 나눈 발길은 고무공처럼 통통 튄다. 오십이 넘어 육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몸에서 고무공의 탄력이 느껴지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달리며 나는 깃털처럼 가벼워져 팔랑팔랑 나는 상상을 한다. 달리면 어깨쭉지 밑에서 깃털이 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끝없이 달리면 깃털이 다 자라 자유로이 하늘을 훨훨 날을 것 같은 꿈을 꾼다. 나는 지금 새처럼 자유로이 이 대지 위를 달리고 있다.
이제는 발길이 대지와 교분을 나눈다. 이렇게 탄력을 받으면 한동안 나의 달리기는 어떤 음악적 리듬을 타면서 춤사위에 가까워진다. 나는 사막을 달리면서 마치 구름 위를 뛰는 것 같은 가뿐함을 느낀다. 바람이 내 몸으로 들어와 공명(共鳴)하는 최고의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봄의 대지 위에 펼쳐지는 신명나는 춤은 대지를 즐겁게 한다. 봄 햇살을 받은 대지도 겨우내 움추렸던 몸을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 때 내 발길이 통통 통 두드려주면 대지도 움찔움찔하는 느낌이 온다. 태양과 나 그리고 대지가 하나가 되는 합일(合一)의 환희(歡喜)를 맛본다. 나무처럼 나의 삶도 대지에 뿌리를 두고 사람들과 대자연의 사랑의 수분을 목말라하며 태양의 온기를 받아 광합성작용을 하면서 생장하며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온전한 평화를 이루는 종교적 깨달음은 수도승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달릴 때 큰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육체에 온 정신이 집중될 때 큰 평화가 찾아온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달리면서 너무도 맑고 깨끗해졌다. 가족과 은사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지만 그것마저도 평화의 눈물이었다.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면 행복에너지인 '도파민'이 생성된다고 한다. 달릴 때 큰 호흡을 하면서 달리는 그 자체에 정신이 집중되기 때문에 잡념(雜念)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가 찾아온다. 몸이 편안하면 마음이 고달프고 몸이 바쁘고 힘들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은 만고(萬古)의 진리이다.
Albuquerque에서 해발고도가 4,500 피트로 내려가서 이제는 계속 내리막길을 가기를 기대했는데 Moriarty로는 다시 해발 7,000피트로 올라간다. 나는 다시한번 록키산맥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거의 한 달을 달리고 달려도 록키산맥의 자락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Santa Rosa로 가서는 다시 고도가 내려가는 가 싶더니 다시 고도가 올라간다. 그래도 이제는 고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뉴멕시코가 거의 끝나가고 텍사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삶의 고난(苦難)과 역경(逆境)이 오히려 생명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둥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제 이 말을 믿게 되었다. 나의 거칠어진 피부와 상관없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고 매일매일 나의 한계를 넘나들며 거의 무한대의 힘을 쏟아부으면서 달려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다.
뒤를 돌아보니 이제 해가 지고 있다. 해가 질 무렵 다시 해를 마주 볼 수 있다.